왜 전쟁기념관에 갔을까?
딱히 전쟁기념관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전시회나 기념관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고, 그때 생각난 것이 전쟁기념관이었다. 어디를 가든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전쟁기념관에 대해 찾아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이 어색하다. 보통 기념이라는 단어는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용하는데 전쟁이라는 부정적인 단어와 함께 놓여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 홈페이지에서도 이런 문의가 종종 있었는지 이름이 정해진 과정을 FAQ에 명시해 두었다.
‘전쟁기념관’의 명칭에서 ‘기념’의 사전적 의미는 “뜻깊은 일을 잊지 아니하고 생각한다”입니다. 기념은 대상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뜻 없이 기억하고 의미를 찾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과 ‘기념’이라는 용어는 전쟁을 찬양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실로서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고 그 교훈을 인식시킴으로써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후략)
이제 이름의 유래도 알았으니 구체적으로 전쟁기념관을 자세히 탐방해본 후기를 보자.
관람 코스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내국인 가족' 코스를 기준으로 삼았다. 1
전쟁역사실1 -> 전쟁역사실2 -> 6·25전쟁실1 -> 6·25전쟁실2 순으로 진행했으며, 운 좋게도 방문일에 여군 특별전도 이벤트 부스에서 진행하여 함께 볼 수 있었다.
전쟁역사실1 (선사시대 ~ 조선 중기 임진왜란)
관람시간 : 10:30 ~ 12:30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의 전시품은 신기하기도 하면서 '진짜? 이 돌이? 이건 찍개보다 찌르개 같은데?' 따위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전시실을 방문해서 꼼꼼히 봐야겠다는 생각에 두 시간이나 걸렸다. 신라의 화려함이 인상 깊었던 공간이었다.
전쟁역사실2 (조선 후기 ~ 광복)
관람시간 : 12:40 ~ 13:40
전쟁기념관 전시실의 가장 좋았던 점은 한국의 시기별 사건을 세계의 주요 사건과 동시대에 볼 수 있도록 비교해 둔 그래프였다. 덕분에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 세계에는 무엇을 주요 이벤트로 다루고 있었는지 한눈에 비교가 되었다.
전쟁역사실2를 관람하면서 새롭게 한 사실은 고종의 대한제국의 선포보다 미국의 노예해방 선언이 먼저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영국군과 광복군이 인도 지역에서 협업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항일운동은 한반도 만주, 상해 등의 지역뿐 아니라 더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과거에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일화를 듣고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마침 전시실에서 우당 선생님의 내용도 있어 기분 좋게 과거를 되내일 수 있었다.
6·25전쟁실1 (발발 배경 ~ 서울 탈환)
관람시간 : 13:50 ~ 14:40
군대를 다녀온 한국인은 6·25 전쟁에 대해 끊임없는 정신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한국 입장에서의 전쟁 흐름은 제법 머릿속에 박혀있어 이번 전시실을 보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6·25 전쟁실은
이곳에서 새롭게 안 사실이라면 '재일학도병(재일학도의용군)'에 대한 내용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전쟁이 발생하자 일본에서 유학 중이거나 거주하던 재일동포들이 자발적으로 출정한 분들을 말한다. 우선은 전쟁의 화마에 휩쓸리지 않은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전쟁통으로 들어가는 용기가 대단했고, 휴전협정 이후에 일본은 이들이 정부의 허가 없이 출국한 것으로 인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하여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6·25전쟁실2 (중공군 개입 ~ 휴전협정)
관람시간 : 14:50 ~ 15:20
무한도전을 꾸준히 보았던 분들은 '홍철 없는 홍철팀'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에는 한국 대표가 없었다. 윌리엄 켈리 해리슨 주니어 중장이 UN과 한국을 대표해서 서명했고, 북한의 남일 대장과 중화민국의 펑더화이 사령관이 서명에 참석했다. 2
이 당시의 피난민과 전쟁의 참혹함을 다룬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를 보니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기적처럼 보인다. 왜 6·25의 해외 참전용사분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며
우리는 역사를 몇몇의 주인공을 통해서 기억한다. 6·25 전쟁은 맥아더, 임진왜란은 이순신처럼 전쟁에는 기념비적인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박물관에는 또 다른 주인공인 민중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약 9개월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받은 일주일의 휴가를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다 문화를 콘셉트로 박물관 및 전시관 순회를 생각했다. 그 투어의 첫 번째가 전쟁기념관이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여서 약 5시간 동안 걸어 다녔지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가지 전쟁기념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엄중한 분위기보다 시민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망자와 함께 지내는 것이 어색하여 묘지, 기념관, 추모관 등 에서는 정숙과 예의를 갖추길 요구한다. 어렵고 거북스러운 분위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여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역효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전쟁기념관의 이름처럼 기념이 되려면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공간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방문 당일은 평일의 낮이었음을 감안해도 너무 한산했다. 입장할 때 나에게 '군인'인지 확인하는 것을 보니 국방부에서 장병들을 대상으로 방문을 장려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효를 거둘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쉬움을 표현하다 보니 길어졌는데 그래도 5시간 넘도록 관람할 수 있는 전시품도 많고, 시청각 자료도 많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중에 가족과 함께 다시 방문하고 싶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디어 학자금 대출이 끝났다!! (1) | 2021.01.08 |
---|---|
[다녀오다] 겸재정선미술관에 다녀오다 (0) | 2020.11.02 |
[SI 프로젝트 TDD 실천기] 2. 통합 테스트부터 프로젝트 철수까지 느낀점 (0) | 2020.11.02 |
[끄적끄적] 나를 롤모델로 삼겠다는 친구가 생겼다 (0) | 2020.07.02 |
[SI 프로젝트 TDD 실천기] 1. 프로젝트 분석부터 개발 초기까지 느낀점 (2) | 2020.05.24 |